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3.1 운동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3.1 운동에 직접 참여했던 [[최은희(언론인)|최은희]]의 증언이 담긴 영상이 있다. [[http://samil-100.kbs.co.kr/news/d/records/index.php|#]] * 3.1 운동 소식을 접한 [[일본 제국|일본 제국의회]] [[귀족원(일본)|귀족원]]은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. 그동안 자신들이 식민지 조선에 일궈 놓은 게 한순간 물거품이 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. * 당시 '''"3.1 운동을 하지 말라며"''' '자제단'을 만든 [[친일반민족행위자]]들도 있었다.[* 이때 대구에서 자제단 본부를 조직, 발기하여 단장으로 활동한 사람이 신념형 친일파로 유명한 [[박중양]]. 항목 참고.] 자제단은 [[대구광역시|대구]]에서 '''조선왕조의 전직 관리들을 중심'''으로 처음 조직되어 점차 전국적으로 조직이 확산되었다. 이들은 독립운동가를 체포하거나 관련 정보를 수집하여 일제에 넘겼다. 또 3.1 운동에 참가한 시민들을 설득, 해산시키며 3.1 운동의 확산을 저지했다. 당연히 [[조선총독부]]의 지원을 받았고 나중에 3.1 운동을 진압한 공로가 크다며 일제로부터 훈장을 받기까지 했다. * "조선총독부"의 통치 전략이 "문화통치"로 전환된 배경에는 일본 국외의 여론 악화와 일본 내부의 민주주의·자유주의 운동인 [[다이쇼 데모크라시]] 외에도 이 3.1 운동도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. * 드라마 [[각시탈(드라마)|각시탈]]에서 [[일본인]]들이 만세 폭동이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당시 일본에선 조선 폭동, 소요 사태 등으로 불렀다. * [[파일:external/i2.media.daumcdn.net/20140301141705953.jpg]] 2014년 3월 1일 [[맨체스터 시티 FC]]에서 구단 트위터에 95주년을 기념하는 트윗을 올렸다. * 일본에서 나온 [[일본 근현대사 시리즈]]에도 3.1 운동이 나온다. 이 책에거는 3.1 운동 당시 사망자 숫자를 [[박은식]] 선생의 주장을 따라 기록했다. * [[유관순]] 열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인 [[항거: 유관순 이야기]]와 [[1919 유관순]]에 3.1 운동 장면에 나온다. * 2019년 1월 15일 [[뉴욕주]] 상·하원 의회가 3월 1일을 '3.1 운동의 날'로 제정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. 애초에 '[[유관순]]의 날'을 지정하는 방안이 추진됐지만 유관순 열사의 저항 정신을 되새기면서도 3·1 운동 100주년이라는 보다 폭 넓은 의미를 부각하는 쪽으로 조율됐다. [[https://news.v.daum.net/v/20190116082717812|#1]], [[https://news.v.daum.net/v/20190116201647877|#2]], [[https://news.v.daum.net/v/20190116064633177|#3]], [[https://news.v.daum.net/v/20190305164806790|#4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